이태원 참사현장(일본 천리교 등장) 불길한 징조***(논란.해석)
이태원 참사 현장에 일본 신도인 천리교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한 것은 여러 가지 해석과 논란을 낳았습니다.
명확한 이유는 그 당사자만이 알겠지만, 당시 상황과 관련하여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1. 희생자 추모 및 위령 의식:
이태원 참사에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희생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은 천리교 한국 본부 소속으로 추정되며, 일본인 희생자를 포함한 모든 희생자를 위한 위령 의식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리교는 모든 인간을 신의 자녀로 여기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의식을 거행했을 수 있습니다.
2. 종교적 의례의 자유: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특정 종교인이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의례를 행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태원 참사라는 매우 민감한 상황에서 일본 종교인이 의식을 행한 것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했습니다.
3. 역사적 맥락과 오해:
일부에서는 천리교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확산에 협력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이태원 참사 현장에 천리교가 등장한 것을 '불길한 징조'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천리교에 대한 역사적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천리교는 일제 강점기 당시 포교 활동을 펼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천리교 신도가 일본 제국주의를 지지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현대의 천리교는 과거의 행적에 대해 반성하고 있으며, 평화와 봉사를 중시하는 종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 논란의 핵심:
이태원 참사 현장에 천리교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한 것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적 민감성: 국가적인 애도 기간 중 발생한 종교 의례에 대한 적절성 논란
역사적 오해: 일제 강점기 천리교의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의식의 내용: 구체적인 의식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일부에서 무속적인 행위로 오해
경찰의 대응: 일반 시민의 추모 행위는 제지되었지만, 특정 종교인의 의식은 제지되지 않은 것에 대한 형평성 논란
이태원 참사 현장에 천리교 관계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한 것은 희생자 추모라는 종교적 목적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시기적 민감성, 역사적 오해, 의식 내용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가지지 않고, 사실에 기반하여 상황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본 신도 천리교에 대해
일본 신도 천리교(天理教)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천리교는 19세기 중엽 일본에서 발생한 신흥 종교 중 하나로, 독특한 교리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 기원과 창시자:
천리교는 1838년, 농민 출신의 여성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1887)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그녀는 41세 때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이후 사람들에게 신과 하나 되어 즐겁게 살아가는 세상을 건설할 것을 설파했습니다.
창시 초기에는 '덴리교'(天理敎)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나카야마 미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점차 종교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2. 주요 교리:
어버이 신(おやがみ, 오야가미): 천리교는 모든 인간과 만물의 근원인 '천리왕명(天理王命, 텐리오노미코토)'을 어버이 신으로 숭배합니다. 이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구제와 현세 이익: 천리교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이 '마음의 먼지'(마음속의 탐욕, 분노, 자기중심적인 생각 등)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마음의 먼지'를 제거하고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과 건강, 그리고 현세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즐거운 삶: 천리교는 신이 인간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신도들은 일상생활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배려하며,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감로대(甘露台, 칸로다이): 천리교 본부(나라현 덴리시 소재)에 있는 특별한 장소로, 신이 처음 인간을 창조한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신도들은 이곳에서 특별한 의식을 행하며 신의 은혜를 기원합니다.
3. 특징:
춤과 노래 중심의 의식: '미카구라우타'(みかぐらうた), '오후데사키'(おふでさき) 등의 노래와 춤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의식을 행합니다. 이는 신에게 감사하고, 마음을 정화하며, 신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봉사 활동 중시: 타인을 돕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한 신앙 실천으로 여깁니다. 의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활동: 일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포교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에도 일제 강점기부터 전래되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4. 한국 전래:
천리교는 1893년 일본인 포교사에 의해 부산에서 처음 전파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상당한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으나, 광복 이후에는 활동이 위축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대한천리교 본부를 중심으로 여러 교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5. 다른 신도 종교와의 관계:
천리교는 일본의 신도(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다른 신도 종교들과는 독자적인 교리와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리교는 어버이 신에 대한 믿음, 마음의 정화, 즐거운 삶의 추구, 봉사 활동 등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의 신흥 종교입니다. 독특한 의식과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도 일제 강점기부터 전래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4111.html
https://www.crs-news.com/10440
“왜 일본 신도 제사장이 여기 이태원 참사에서 제사를 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온 힘을 다해 주술적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참사장 주위를 맴돌며 주문만 외우던 그가 드디어 참사장 안에 들어가 제의까지 하다니.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시대 부흥한 신흥 신도가 왜 용산에 나타났을까?
제사를 누가 허락했을까?”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279467
https://www.crs-news.com/10448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5149.html
https://pisgah.tistory.com/notice/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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